Curatorial statements
_김혜리
01
글_최재희
인적이 드문 새벽녘, 우리는 텅 빈 도로 위 신호등의 빨간불 앞에 멈추어 선다. 이는 단순한 규범의 준수를 넘어, 보이지 않는 타자가 나와 동일한 규칙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신뢰는 보이지 않는 타자와 나를 연결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매개이며, 이 유대가 깨지는 순간 비로소 관계의 위태로움은 가시화된다.
김혜리 작가는 관습화된 신뢰를 넘어 그 이면에 있는 개별적 신뢰의 사건에 주목한다. 이는 타자와의 관계이자, 과거의 기억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한 태도로 확장된다. 이 조우는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심’을 배제하지 않고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드러난다. 자아와 정체성, 사회적 관념에 관한 양가성 등이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으며, 흔들림 속에서 다시 구성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드로잉에서 시작해 미드저니와 ChatGPT, 3D 모델링 등의 기술을 더해 회화나 설치, 영상 작품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통해 신뢰의 불완전한 속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AI가 제안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평균적인 서사’인 ‘클리셰(Cliché)’를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신화와 전형성이 보편적 신뢰의 데이터화된 원형이라고 상정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참조 혹은 바니타스 개념 등의 고전적 알레고리 요소를 접목한다. 보편적 신뢰 위에 개인적 서사와 요소, 표현 기법을 덧입힘으로써, 경계 사이를 모호하게 만들며 화면을 구성한다.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인체와 식물의 유기적 결합에서도 ‘의심을 동반하는 신뢰’의 요소를 잘 드러낸다. 식물과 혈관의 구조에서 출발한 형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와 관계 맺는 가변적인 우리의 모습을 은유한다. 이러한 꽃의 형상은 장기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익숙함 속에 생경함’을 통해 아름답지만 기괴하게 느껴진다.
<Who Will Dry Your Eyes When It Falls Apart?>은 숲속에서 마주 보고 무릎 꿇고 있는 두 날개 달린 인물들을 중심으로 화면이 구성되어 있다. 인공물같은 신체와 후경의 벽처럼 보이는 자연과 금속 질감의 식물들로 만들어진 투구는 유기물의 무기물로 전환되는 변형의 상태를 드러내며 무기체와 유기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한 인물은 차갑고 무기체적인 몸 위에 이끼와 돌이 덮여 점차 유기화되는 듯 보이고, 다른 인물은 붉은 기와 빛을 가진 살아있는 생명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쌍방 구원처럼 보이기도, 빛을 띤 인물이 다른 한쪽의 눈물을 닦아주는 순간처럼 읽히기도 한다. 동시에 자연물이 신체를 덮어가는 변화가 회복인지 소진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세로로 붓 터치한 빛은 회화에 글리치 같은 디지털적 감각을 더하며 버섯과 두상 등이 어우러진 신화적 풍경은 아름다움과 불안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생경함을 느끼게 하며 전도된 감각 속에서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가게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주 보는 청둥오리 쌍은 혼례 목기러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색을 잃은 암컷 오리의 죽은 듯한 모습은 수컷과의 관계에서의 소진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인물을 바라보는 전경의 암컷 오리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들, 오리 한 쌍의 구조는 되풀이되는 관계의 형식임을 암시한다. 결국 작가는 서로에게 기대어 신뢰를 이루는 관계가 구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소모하는 위태로운 사건임을 보여주며, 신뢰 관계를 확정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처럼 작가 작업 전반에 흐르는 생경함은 신뢰를 안정된 믿음이나 불변의 상태로 고정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믿어져 온 이야기와 기술을 응용한 매체로 구성된 작업은 익숙함과 낯섦이 겹친 장면 속에서 관람객은 새로운 신뢰의 형태를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설명 대신 관객이 그 앞에 머물며 스스로 관계를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관습적 서사와 보편적 이미지, 기술이 만들어낸 전형 위에 개인의 서사와 감각을 덧입히는 과정에서 신뢰는 완성된 의미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사건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의심을 동반한 관계 맺기를 통해, 신뢰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동시에 어긋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타자와 함께 하기를 선택한다. 신뢰는 관계 속에서 다시 조율되는 정동이며, 흔적으로 남는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된다.
02
글 _오현빈
현대사회에서 신뢰는 점차 대상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 신뢰의 대상이었던 신은 절대성을 잃었고, 인간의 이성 역시 객관성을 잃었다. 태곳적부터 진리로 여겨진 요소들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확실치 않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신뢰의 대상 상실에서부터 오는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무엇이 우리에게 다시 신뢰의 따스한 온기를 전달해 줄까. 인공지능 이미지의 감쪽같음과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거리들은 우리에게 차가운 불신만을 전해준다.
이때 작가는 신뢰는 상호 오해이며, 그 오해가 맞닿았을 때 생기는 공명이라고 답한다. 완전한 확신이 아닌, 어렴풋한 믿음이 서로 맞닿을 때 우리는 신뢰라고 하지만 작가는 이를 상호 오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 맞닿을 수 있을까? 이에 작가는 이야기라는 장에서 맞닿고자 한다. 작가 역시 신뢰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인간 내면에 내재한 죽음에 대한 불안과 세계화 시대에서 규정되기 어려워지는 정체성에서 오는 혼란 등 과거 진리와 이성을 통해 답을 내렸던 질문에 의문을 품는다.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은유하여 비틀어 고전 신화에 이야기를 숨겨두는 식으로, 관객들의 외침에 화답하는 메아리를 만들어낸다.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나 셰익스피어가 자아내는 고전 문학은 이야기가 이어져 온 역사의 시간만큼,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선호하는 이야기인지를 보여준다. 다수가 선호하는 대중적인 이야기는 우리와 한 뼘 정도 멀어져 있는 이야기 같지만, 작가는 그 이야기에 가장 내밀한 각 개인의 이야기를 은유하여 숨긴다. 삶과 죽음의 한 끗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국적, 성적 지향성 등 쉽사리 단정 짓기 어려운 개인의 내밀함은 어딘가에 토로하기 힘들다. 이에 작가가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이야기는 관람자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히 꺼낼 수 있는 일종의 '안전지대'로 작용한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야기가 세밀해지는 과정과도 맞닿아있다. 작가는 그림의 스케치를 어렴풋한 이미지로서 구성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3D 렌더링으로 구도를 짠 다음, 작가는 회화기법과 판화기법을 이용하여 그림에 상세한 서사를 더해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발전하는 기술에 따라 우리가 기술 매체를 어떻게 신뢰하고 이용할 지에 대해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인간보다 더욱 광범위한 시야로 인간이 선호하는 내용들을 수집하고 큰 밑바탕으로 제공한다면, 작가는 그 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섬세히 자수 놓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작가는 캔버스 위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야기를 읊어주는 무형, 혹은 오브제와 같은 유형으로 현실에 구현해 내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서사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표현한다. 영상, 설치 등의 다매체로 변화되는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 형식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으로 와닿는다. 특히 작가는 '빛'이라는 소재를 응용하여 이야기의 부분을 라이트 박스의 형식으로 구현하여 현실에서도 환상적인 이야기가 연속되도록 유도한다.
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Vignette> 시리즈이다. 라이트 박스 위를 비누로 덮어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게 한 이 작품은 선적인 가상의 식물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난초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상상 속에서 본 꽃의 요정과 같은 모습은 ‘빛’과 합쳐져 가상의 이야기를 현실에 드러낸듯하다. 라이트 박스를 덮은 비누는 물이나 열에 쉽게 변형되는 물질이다.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이뤄지지 못하면 거품으로 변해버리는 이야기를 형상화 하는 물질인 것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이에 비누로 덮인 이야기는 더욱 환상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상상 속에 묻혀있던 이야기를 빛으로 드러내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형상으로 놓인 작품은, 관객의 현실과 상상으로 이어주는 교각의 역할을 한다.
이에 작가는 제안한다. 작품 속에서 마음껏 오해하고 이야기의 나래를 펼쳐보라고. 신뢰가 상호 오해라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는 수만가지의 오해로 얽혀있다. 나의 이야기, 타인의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가 섞인 작품 속에서 관객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믿고 싶은 이야기의 가닥을 잡아내길 바란다. 그러고는 이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어가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