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ial statements
_기획자 프로젝트:
  관계의 지형도 그리기

01

정동이 어떻게 형태를 갖추는가

글_김효진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낯선 사람의 눈빛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때가 있다. 어쩌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일일지 모른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이 감각은 ‘정동’이라 불리며, 인식 이전의 차원에서 미세하게 발생한다. 정동은 감정처럼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몸의 반응 속에서 분명한 자취를 남긴다. 그리고 이후의 감정과 행동, 관계의 방향에까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한다. 무형의 정동이 만약 ‘형태’를 갖춘다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관객 참여 프로그램 〈관계의 지형도 그리기〉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정동의 자취가 관계적 움직임 속에 물질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장 바닥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하는 실이 설치되어 있으며, 관람자는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실을 따라 이동한다. 매듭을 풀거나 지시문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실을 당기거나 느슨하게 만든다. 이때 개인의 정동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실을 따라 타인에게 전해지고, 다시 예기치 않은 감응을 낳으며 관계 속에서 증폭된다. 관람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의 감각에 개입하며, 공간 속 물리적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경험은 고유한 시간적 구조를 수반한다. 움직임과 멈춤, 접촉과 전환이 반복되는 과정은 바슐라르가 말한 리듬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시간은 단속(discontinuity)과 재개(resumption)의 연쇄로 구성되는데, 이는 끊어짐과 이어짐이 반복되는 시간의 구조를 의미한다. 매듭 앞에서의 멈춤은 시간의 단속을 만드는 ‘점(node)’이 되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이동은 단속 사이를 이어붙이는 ‘선(edge)’으로 작동한다. 관람자의 움직임은 단속된 정동의 순간들을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결시켜 리듬적 구조를 형성한다.

전시장 바닥의 실은 이러한 리듬적 구조를 기록하며 ‘정동의 지도’를 그려낸다. 실은 관람자의 움직임과 정동의 진폭에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참여가 거듭될수록 변화는 층층이 중첩된다. 누적된 감응의 지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집합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관람자는 이 지도 위에서 자신의 감각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를 어렴풋이 체감하게 된다. 



〈관계의 지형도 그리기〉 참여 안내

1. 전시장 바닥을 가로지르는 실 중 하나를 선택해, 각자의 출발점에서 이동을 시작합니다.
2. 실을 따라 걷다 매듭을 만나면 잠시 멈추어 지시문을 확인합니다.
3. 매듭에 부착된 지시문을 읽고, 안내에 따라 매듭을 풀거나 행동을 수행합니다.
4. 다른 관람객의 움직임으로 실이 당겨지거나 느슨해지는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5. 정해진 종료 지점은 없으며, 원할 때 언제든 체험을 마칠 수 있습니다.



[1] 본 작업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16마일의 실 (Sixteen Miles of String)〉(1942)에서 전시 공간을 실로 가로지르며 관람자의 이동과 시선을 방해했던 방식에서 출발한다. 뒤샹이 전시 공간의 질서를 교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본 작업은 실을 매개로 관람자 간의 관계적 움직임과 정동의 전이를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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