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ial statements
_김가진
_김가진
01
글_이혜린
디지털 플랫폼이 관계의 주요한 매개로 작동하는 오늘, 신체는 더 이상 관계의 중심적 조건으로 전제되지 않는다. 우리는 화면을 통해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고, 물리적 공존 없이도 접속을 통해 관계를 유지한다고 느낀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이 일상화된 시대는 종종 ‘탈육체화 된 세계’, 혹은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관계’의 가능성으로 상상되어 왔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오히려 신체는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변형되고 얇아진 형태로 표면과 흔적의 차원에서 여전히 관계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1]
신체로부터 분리된 사고를 인간 이성의 이상으로 설정해 온 사유의 계보는 고대에서 근대를 거치며 반복되어 왔다. 특히 데카르트 이래의 육체–정신 이원론은 정신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신체를 부차적 조건으로 밀어냈다. 디지털 기술과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이러한 사유를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듯 보였고, 하이퍼링크와 원격 접속은 신체가 개입하지 않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감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탈육체화는 완전한 지각과 관계를 대체하지 못했으며, 신체는 제거되기보다 다른 형식으로 귀환해 왔다.
김가진의 작업은 바로 이 ‘탈육체화 이후의 신체 조건’을 시각적으로 사유한다. 작가는 “접속은 있으나 만남은 없는” 동시대적 관계 구조를 빛과 레이어, 막을 통해 구성한다. 작업에서 신체는 완전한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반투명한 표면 속에 내장된 이미지로 등장하며, 이 표면들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가 만나는 접촉면이자 차단면으로 기능한다. <Habitable Dialogue> 시리즈의 인물들은 서로를 향해 기울고 포개어져 있지만 끝내 합쳐지지 않는데, 이는 탈육체화된 환경 속에서 신체가 정보나 이미지로 환원되었음에도 완전히 소거되지 않고 감각의 잔여로 남아 있음을 은유한다.
이러한 신체의 잔존은 특히 ‘빛’을 통해 강화된다. 김가진의 작업에서 빛은 비물질적 관계가 신체의 감각을 호출하는 방식이다. 레진과 아크릴을 통과한 빛은 이미지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거나 내부로 스며들게 하며, 생물적 존재감과 비물질적 덧없음 사이에서 진동하게 만든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사라지는 빛은 언제든 끊길 수 있는 연결과 불안정한 관계의 조건을 환기시키는데, 이는 기술이 실제의 접촉을 대체하고, 신체 정보를 코드화해 교환해 온 과정—접촉이 지연되고 유예되어 온 역사—와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즉, 김가진의 빛은 접촉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접촉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흔적으로만 남는 것이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막’은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감각 구조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단순한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감각이 중개·지연되는 인터페이스적 공간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타자를 직접 만나는 대신 스크린을 경유해 관계를 경험하게 되고, <Embedded Embrace> 시리즈에서 실리콘으로 캐스팅된 막은 이러한 조건을 물질적으로 구현한다. 실리콘 표면은 내부의 빛을 머금어 외부로 스며들게 하며, 신체의 존재를 강렬한 육체성 대신 표면에 남은 잔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신체는 더 이상 세계를 점유하는 중심이 아니라 매개된 환경 속에서 변형되는 감각의 장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김가진의 작업은 ‘신뢰’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게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관계는 쉽게 연결되지만 그만큼 쉽게 끊어지며, 근원적 신뢰는 보류된 상태로 남는다. 김가진의 작업 속 신뢰 역시 안정된 결속이 아니라 불확실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경험이다. 인물들은 서로의 윤곽을 붙잡으려 하지만 완전한 접촉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접촉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타자에게 자신을 노출하고 취약성을 감수하려는 태도로서의 신뢰다.[2]
이렇듯 김가진은 디지털 시대의 탈육체적 조건을 결핍이나 상실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육체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신체의 감각과 접촉에 대한 욕망, 그리고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관계를 시도하는 존재들의 상태를 포착한다. 빛과 레이어 사이에 남은 잔영과 미끄러지는 윤곽들은 접속과 만남 사이, 현존과 부재 사이에 형성된 감각의 지형을 이루며,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관계의 감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김가진은 결국 디지털 매개가 지배적인 시대에도 인간이 여전히 몸을 통해 감각하고, 접촉을 욕망하며,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임을 조용히 증언하는 듯하다.
[1] 박선희, 「탈육화 담론의 비판으로서 육화 이론」, 『언론정보연구』 47권 1호, 2010, 206–207쪽.
[2] 휴버트 드레이퍼스, 『인터넷의 철학』, 최일만 옮김, 필로소픽, 2015, 95–97쪽.
02
글_한효진
김가진의 작업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오늘날의 접촉이 성립하는 조건을 드러내는 매개다. 작가는 레진, 종이, 실리콘, 아크릴 등 빛을 머금고 통과시키는 재료를 통해 현대인의 접촉과 교류 방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
작품은 어둑한 공간에서 흰 벽과 거리를 둔 채 매달려 있고, 바닥에 놓인 로고 프로젝터의 빛은 에폭시 레진 판을 통과해 벽 위에 그림자를 만든다. 관람자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레진 판이 아니라, 레진이 경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굴곡과 층이 빛을 굴절시키며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빛은 표면을 따라 부서지고 휘어지며 번져 나가고, 그 번짐은 레진의 층위가 만든 불규칙성 때문에 하나의 패턴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레진 판의 물리적 경계와 벽 위에 형성되는 빛의 경계는 분리되기보다 겹쳐지며 흐릿해지고, 작품의 범위는 벽 위에 번진 아우라까지 포함된다. 이때 투명성과 반투명성은 재료의 성질에 그치지 않고, 지각의 경계를 외부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확장은 빛의 전원을 끄는 순간 중단되고, 레진 판만이 남게 된다. 프로젝터의 위치, 전원의 지속, 그리고 레진 층이 만든 굴절이라는 조건이 맞물릴 때만 이미지의 장이 성립하며, 조건이 끊기는 순간 그 장은 곧바로 해체된다. 이 불안정성은 빛이 작품을 장식하는 요소가 아니라, 관계가 외부 조건에 의해 얼마나 쉽게 성립하고 해체되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접촉이 이러한 조건 위에서 작동한다는 인식은, 관계를 통해 쌓아나가는 신뢰 역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특정 조건들 위에서 유지되는 상태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이 인식의 구조를 떠받치는 것은 레진 표면에 전사된 인체 이미지들이다. 화면은 여러 인물이 서로 얽히고 껴안고 있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각 형상의 외곽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완결된 인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발가락, 손가락, 다리, 귀 같은 부분적인 지표들이 화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이 파편들이 서로 겹쳐진다. 중요한 것은 이 겹침이 완전한 결합으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기대고 스며드는 듯 보이지만 온전히 포개지지 못한 채 어긋나고,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따라서 신뢰는 고정되었다기보단, 분절과 중첩 속에서 형성되고 흔들리는 관계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신뢰의 작동 방식을 비관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화를 찾아낸다. 〈Habitable Dialogue〉
따라서 레진과 빛, 파편화된 신체와 그것을 비추는 조명은 한 번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형성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접촉과 신뢰의 조건을 드러낸다. 여기서 반복은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라, 관계가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매번 조정되는 과정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신체 파편들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접면은 관계의 형태를 보여주고, 빛의 전원을 끄고 켬에 따라 신뢰가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을 노출한다. 결국 김가진의 작업은 접촉을 합일이 아니라 어긋남과 중첩이 지속되는 상태로 제시하는 것이다.